할리우드 배우와 천재 과학자 사이, '헤디 라마르'

할리우드 배우와 천재 과학자 사이, ‘헤디 라마르’

[HERSTORY]

매혹적인 외모로  30-40년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꼽히던 헤디 라마르.

10대때부터 주연을 맡은 그녀는 구스타브 마하티 감독의 영화 ‘엑스터시’에서 파격적인 연기로 ‘라마르’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당시 영화에서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호수에서 수영하다 숲 속으로 뛰어가는 장면이 그녀를 유명하게 만들었고, 이는 영화의 주연급 여배우가 전라로 연기하는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기도 했다.

라마르는 혜성처럼 떠오르며 쉼 없이 쏟아지는  러브콜을 받았고 당대의 인기 배우들과 함께했다. 하지만 ‘엑스터시’에서 각인된 이미지 때문에 라마르에게 주어지는 역할은 ‘미녀’ 캐릭터뿐이었다. 관객들은 라마르의 아름다움에 열광했고 그의 얼굴을 더 오래 보고 싶어 했다.

코미디 영화를 찍어도, 커리어 우먼을 연기해도, 라마르는 롱 클로즈업 신을 위해 조각상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염증을 느낀 라마르는 “어떤 여성도 매력적일 수 있어요. 단지 가만히 서서 바보처럼 보이기만 하면 돼요.”와 같은 비판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업적은 그저 할리우드 유명 영화 배우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저 외모가 매혹적인 배우로만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사실 라마르는 연기 활동 못지않게 과학기술 연구에 열정을 쏟았다. 그녀가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블루투스, 와이파이 등 무선 전파 기술에 큰 공헌을 한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어릴 적부터 수학과 과학에 능통했던 라마르는 무기 제조업자와 결혼하면서 과학 분야를 접하게 된다. 그녀는 남편과 군용 기술 개발과 관련된 미팅 등에 참석하며 군사 기술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권위적이고 나치에 협조하는 남편과 이혼을 결심한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라마르는 발명가이자 작곡가인 조지 앤틸과 함께 연합군을 돕기 위한 ‘주파수 호핑 기술’을 개발했다.

이는 잠수함이 수중 무선유도 미사일을 발사할 때 적함이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주파수 혼동을 일으키는 기술을 뜻한다.

그녀가 발명한 ‘주파수 도약’과 ‘대역 확산’은 1950년대부터 재조명됐다. 전자시대의 막이 열리면서 라마르의 기술은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기술로 발전했다.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블루투스, 와이파이도 그의 발명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기술들이다.

하지만 그녀의 공적은 1997년에서야 세상에 알려졌고 특허권은 한참 전인 1957년에 만료돼 그녀는 어떤 재산상의 이득도 얻지 못 했다.

라마르는 86세의 나이로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숨을 거뒀다. 라마르는 죽는 날까지도 그림을 그리고,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사용한 휴지를 버릴 주머니가 달린 곽티슈 등 발명을 계속했다고 한다. 2017년 그의 삶을 다룬 <밤쉘>이라는 영화가 개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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